여행생활자

크로아티아 여행기 #1

bigapple52 2020. 4. 25. 20:53

크로아티아 여행기 #1


나혼자 여행 : 크로아티아



꽃보다 누나를 보다가, 꽃보나 할배를 보다가, 걸어서 세계속으로를 보다가, 배틀트립, 삼시세끼를 보다가, 온 몸의 구석구석 세포가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순간이 있다. 결국에 여행을 떠나게 만드는 그 순간, 생각을 결심으로, 결심을 실행으로 옮기게 하는 순간이 있다. 그때 나는 그랬다. 이대로 빚만 갚으며 하루하루 살다가 죽어버리면 공짜로 세상구경만 하고 돌아다니면 좋을 텐데.. 엄마에게 등짝 스메싱 맞을 생각을 하다가 결국엔 생각을 실행으로 옮겼다. 나의 첫 나홀로 해외여행이자, 온전히 '나'로 움직였던 하루들, 6개월의 준비과정 속에서의 설렘과 두려움, 열흘 채 되지 않은 낯선 곳에서의 삶은 참으로 모든 순간이 단짠단짠했다.  



코로나19로 경보음에도 놀라지 않는 지경이다. 그래도 조심 또 조심해야하니, 식당도 안가겠다는 딸을 어머니는 유난이라며 혀를 내두르신다. 그래도, 그래도!! 하늘 길이 막힐 거라 상상도 못했는데.. 2년도 더 지난 여행기를 쓰면서 나름의 위안을 삼아보려고 한다... 참고로 나의 여행기는 그냥 일기에 가깝고, 온전히 기억에 의존한 여행기다. 정확한 정보와 뭔가 여행고수의 팁과 지혜를 원한다면.. 아주 많이 부족한 글이 될 것 같다. 



크로아티아로 여행지를 정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꽃보다 누나였다. 어느 누가 그 영상을 보고 여행을 꿈꾸지 않을 수 있을까. 아름다운 풍경과 아기자기한 도시풍경, '유럽'의 냄새는 항상 여행자의 발길을 잡아끈다. 나는 그 냄새를 오래되어 케케묵은 도서관의 구석의 누런 종이책의 향으로 묘사하고 싶다. 여튼, 크로아티아로 웬일로 온 몸이 단합하여 Yes라고 말하자, 여행도서를 사고, 날짜를 살폈다. 매일 움직여야 하는 일을 하고 있고, 내 몸뚱아리가 곧 내 자산인 나로서는 길게, 그리고 평일을 온전히 쏟아부어 비행기를 탈 수는 없었다. 그래서 명절연휴를 살폈다. 오케이, 부모님께는 눈총을 좀 받더라도, 기꺼이 막내딸이 추석연휴에 여행을 간다는 걸 막지 못하실거라 추석연휴로 날을 잡았다. 앞뒤로 날짜를 당기고 빼고, 늘려보고 점오의 날짜를 생각하면서 겨우 날을 맞추고, 일단 지르면 갚아진다는 신용카드 사용법대로 비행기를 가장 싼 걸로 구입했다. 나중에 이 값싼 비행기티켓이 나의 마음을 쓰라리게 하기도 했다. 



일단 비행기를 끊고 난 후, 루트별 숙소와 이동수단 들을 찾았다. 난생 처음 인터넷으로 다른 나라의 버스도 예약해보고, 뭔가 인터내셔널한 인간이 된 것 같았다. 이래뵈도 영어도 가르쳐본 사람인데.. 참 촌스럽게 이런건 또 무섭고 두렵다. 여튼, 숙소까지 예약을 마치니, 나는 곧 떠날 사람이라는 생각이 6개월동안 계속 되었다. 그 덕에 힘든 하루, 힘든 사람, 힘든 시간들이 그나마 견뎌졌던 것 같다. 내가 이렇게 여행을 좋아했던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였다. 쉬는 날에는 항상 쇼파에 누워 리모콘과 물아일체가 되는 나인데, 이미 비행기를 타고 출근하고 있었고, 선글라스를 쓰는 날에는 이국의 거리를 거니는 중이었다. 



루트별 숙소를 찾다가 문득, 그동안 열심히? 일한 나에게 나름의 보상을 주고 싶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좀 부끄럽다. 누가 보면 자린고비인 줄 알겠지만.. 씀씀이가 결코 쫀쫀하지 않은 사람으로, 매달 남다른 보상으로 살을 찌우고, 물건을 구입한다. 특히 문구류와 티셔츠.. 여튼, 없는 돈으로 여행을 하려니 한없이 사람이 초라해지는 거다. 그래서 하루만큼은 멋진 호텔에서 자고 싶어졌다. 이래서 다들 호캉스 호캉스 하나보다. 마지막 도시에서 1박에 5장짜리 숙소를 예약했다. 이제 눈썹날리게 일해야 한다. 저 돈은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할부로 끝나야 하기 때문에.. 




기억에 의존하여, 대략의 정보를 올려봐야겠다. 일단 항공편은, [인천-이스탄불-자그레브 in] & [두브로브니크 out-이스탄불-인천] 으로 예약했다. 나름 끈기의 보석을 가진 사람이지만 미용실에서도 2시간이 넘으면 가만 못 있는 스타일이라, 경유가 가장 짧고, 가장 싼 값의 항공편으로 예약. 아! 한가지의 기준은, 경유지도 내가 안 가본 곳으로 잡았다. 터키 이스탄불.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다. 참 신기하게도 경유한 나라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꼭 다시 여행을 갔었다. 그런 행운의 의미로 당첨!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했을 때, 약간 문화적 충격이랄까, 촌년처럼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여기저기 사람 구경하느라 정신없었던 기억이 난다. 왜냐, 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래도 여행 안다녀본 사람도 아닌데, 이렇게 세상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북적이는 공항 한 가운데 있어 본 적이 없었다는 거다. 나름 오픈마인드와 세계화와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함을 배우고 자란 세대로서, 글로 읽고 오지선다로 택했던 그 과목의 바로 그 내용의 현장이 눈앞에 펼쳐지니, 신기하고도 가슴이 벅찼다. 뭐, 그냥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많았다는걸 이렇게 거창하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지만, 나름 재미있었고, 간만에 느낀 스릴감에 과장을 좀 해본다. 



막상 여행지에 도착했을 때는 설렘보다는 설렘을 느끼려는 애씀과 여행이라는 즐거운 행위에 대한 예의로서, 낯선 곳에 적응하려는 미소와 약간의 억지스러운 제스쳐들이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너무 피곤하고 공항화장실에서 한 세수가 만족스럽지 않아 찜찜한 상태였다. 그래도 하나 하나, 새로운 장면과 새로운 공간에서의 시간을 온몸으로 느끼고 기록하려고 애썼다. 일을 이렇게, 사람을 만날 때 이런 애씀을 보여주면 안되겠니 나 자신아.




DAY 1 자그레브. 아침 일찍 자그레브를 도착한 덕분에, 상쾌한 아침 공기와 한산한 오전 풍경을 만끽할 수 있었다. 공항버스를 타고 자그레브 도심으로 향했다. 친절함이란 자연스러운 것 같다. 특별히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이 곳이 낯선 사람이 경계하지 않도록 먼저 다가오지도 그렇다고 아예 무관심하지도 않은 미소와 어색한 몸짓. 그 비슷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친절한 공항버스 아저씨 덕분에 한방에 버스를 찾아서 도심으로 달렸다. 조금만 천천히 달렸으면 했다. 이 길이 생각보다 길었으면 하고. 이 곳에 오기 전에는 이 곳에 오는 날을 세었다면, 이제 여기에 도착했으니 돌아갈 시간을 세어야 하기 때문이다. 버스터미널에 내려 어렵게 티켓을 구입하고, 어색한 몸짓, 발짓, 손짓으로 트램에 올랐다. 아무도 관심이 없다. 여행지에 여행객이 왔으니. 생각보다 붐비지 않는 도시의 풍경이 좋았고, 어색하게 트램을 타고 숙소로 향했다.



숙소로 가는 길은 힘들었다. 무거운 캐리어때문에. 이 여행지의 낭만을 느낄새도 없이, 뜨거운 태양이 긴팔을 입은 나에게 뭐라 하는 것 같았다. 뭔 호사를 누리겠다고 옷도 잘 못 입는 것이 긴팔을 입고 멋을 좀 부리겠다고 애쓰다가 그냥 땀만 뻘뻘 흘렸다. 여행책자에서 봤던 그 광장과 그 성당이 보였다. 일단 짐부터 풀고, 땀을 식힌 후, 제대로 이 도시를, 이 시간을 누려야지. 나홀로 여행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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