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나들이 : 누리마루공원
부산나들이 : 수영 APEC 나루공원
나는 부산사람이다. 부산에 여행을 온 지인이나 누군가를 데리고 부산을 소개해주거나 간단히 어딜 데려가야 하는 때 정말 난감하다. 부산에서 자랐지만 참 부산에 대해 모를 때가 많다. 추천맛집, 부산이라면 꼭 가봐야 하는 곳이라 거나 등등, 여행 깨알팁 같은 것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누가 부산에 와서 어딜 가야 하냐고 물으면 참.. 할 말이 없다. 나만 그런가? 내가 사는 곳을 찬찬히 들여다보지도, 즐기지도, 애정을 가지고 들여다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조카들이 생기고 부산에 올 때면 뭐 대단하다고 그 바닷가에 그 해변에 그 모래사장에서 모래놀이를 하겠다고 뒤뚱뒤뚱 걸을 적부터 여지껏 늘 새로운 곳인 마냥 바다를 찾아간다. 나는 스무살이 넘어서야, 아니 그러고도 훌쩍 시간이 지나서야 내가 바다 근처에 살고 바다냄새가 익숙하고 이 해변산책로가 참 소중하고 고마운 것임을 알았다. 그래도 매번 모래놀이는.. 참 힘들다. 그래도 모래를 가지고 노는 조카들을 볼 때면 기분은 참 좋다. 나도 어른이 되었나보다. 손톱에 모래가 끼는 것도 옷과 신발, 손에 모래가 묻어 털어내야 하는 것이 이리도 귀찮은 일이 된 걸 보면 말이다.
추운 겨울, 조카들이 내려왔다. 참 미안하다 언니와 형부에게.. 분명 그 둘도 같이 내려왔는데.. 나에겐 조카들이 온 것이 더 큰 사건이니 말이다. "언니네가 왔어"가 아니라 "조카들이 왔어"가 내 입에서 먼저 나오니... 무료한 일요일을 그냥 보내기 아쉬워 해변을 가겠다는 조카들을 꼬드겨 산책에 나섰다. 장모님의 큰 손 덕에 배터지게 먹은 두 끼의 소화를 위해서 우리는 목도리, 장갑, 꽁꽁 싸매고 집을 나섰다. 부산 어디를 가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아버지께서 거기 가보란다. 나루공원. 거기가 어딘가요? 나루공원? 누리마루 근처를 이야기하는 것인가 싶어 묻다보니 동백섬 그 즈음이 아니다. 나루공원이 어디지.. 하다가.. 아! 거기가 나루공원이구나 싶었다. 일다니며 자주 지나다녔던, 예전엔 거기서 소풍도 하고 보물찾기도 했었지.. 올림픽공원? 뭐 비슷했던 것 같은데... 수영강을 따라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 영화의 전당을 지나는 그 헛헛한 공원. 바로 거기가 나루공원이었다. 정식 명칭은 APEC나루공원.
모래놀이하러 가는 줄 알았던 조카들이 그 길이 그 길이 아닌 것을 깨닫고 축축 늘어질 때, 이모는 어제 밤 조카님 입에서 세뱃돈 받은 걸로 이모 좋아하는 커피 사준다기에 냉큼 기억해두었다 이쯤에 써먹는다. 조카님, 이모 커피 사주세요! 귀여운 조카님들, 큰돈 나갈까 걱정스런 눈빛이 정말ㅎㅎㅎ 딱 추운 그 겨울 그 날씨,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 먹으려 누리공원 가는 길 초입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저렴한 체인점이었지만 우리 조카님의 눈동자는 떨리고 있었다. 5000원에 이모 커피 한 잔 생각했다가 온 가족 커피를 다 사게 생겼으니.. ㅎㅎㅎㅎㅎ 어찌나 귀여운지.. 냉큼 이모가 한 턱 쏜다. 안도하는 너의 입꼬리가 정말 귀엽구나.
수영교와 누리마루 해변산책로, 누리마루 광장, 수영천과 강변을 따라 늘어선 아파트가 참 도시스럽다. 우리조카님은 서울 인근에 살면서 부산을 도시라 칭하며 좋아한다. 여기서 살고 싶다면, 이렇게 높은 빌딩들이 있어서 좋다며.. 우리의 산책코스는 민락동 MBC방송국부터 민락교를 아래로 산책로를 따라 고래동상이 멋드러진 수영교를 지나 다리 아래로 통과하면 수영천과 공원해안산책로가 나온다. 그 길로 신세계백화점을 지나 영화의 전당까지 가는 코스. 사실 정하고 간 것은 아닌데, 어쩌다 보니 거기까지 걷고 걷고 또 걸었다. 가끔 영화보러 걸어서 극장에 가곤 하는데 그 길로 찹찹한 겨울 바람 맞으며 가족들과 산책하는 기분 또한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겨울하늘 답게, 찬 기운이 느껴지면서도 청량한 기분, 쨍한 햇볕과 파아란 하늘빛이 정말 좋았다. 따뜻한 커피 한 잔 홀짝홀짝 하며 사진도 찍고 가족들과 이런저런 담소도 나누고, 그냥 아무 말 않고 걸어도 좋았다. 차가운 공기가 옷 사이사이 공간을 비집고 들어오며 춥기도 했지만 이 또한 겨울 산책의 매력이다.
APEC 나루공원 : 부산 해운대구 수영강변대로 93 (우동 1494)
연휴라 사람들이 많진 않았다. 나루공원 내 센텀 마리나파크에서는 해양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단, 연휴기간엔 휴무! 간간히 사람들이 있었지만 사람들이 찾지 않는 겨울 공원을 거니는 것도 나름 매력적이다. APEC 나루공원은 2005년 APEC 정상회의를 기념하기 위하여 조성한 곳으로 부산 센텀시티의 랜드마크 공원으로 자리잡았다. 강변을 따라 늘어선 아파트 주민들의 산책로이자 부산시민들의 휴식공간이기도 하다. 기념광장과 야외무대, 조망대, 잔디광장 등이 있고 공원 곳곳에 부산 비엔날레 조각프로젝트에 출품되었던 작품들이 보인다. 조깅코스와 조명분수도 있다. 시민에게 24시간 개방되어 있는 깨끗하고 따사로운 겨울 한 낮의 공원이다.
수영교를 아래로 지나 공원으로 점점 다가갈 수록 가슴이 확 트이는 듯한 넓은 산책로와 정갈한 공감이 눈에 들어온다. 공원의 나무가 참 좋다. 공원의 나무로 만든 시설물이 나는 참 좋다. 차갑지 않고 부드러우며 모나지 않고 조화스럽다. 인위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여기가 공원이고 산책로임을 알려주는 그래도, 그나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의를 갖춘 모양과 색이 고맙다.
해변을 못 가 아쉬운 조카들의 눈에는 이 곳이 어떻게 보일까. 어릴적 작은 삼촌이 어린 조카들을 데리고 산이고 들이고 바다고 데리고 자연체험을 시켜주셨었다. 그 곳이 어디었는지, 거기서 무엇을 보았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곳에 함께 있었고 즐거웠고 나는 모험을 했고 거리가 꽤나 먼 개울을 껑충 뛰어 지나야 하는 순간에 용기를 내어 있는 힘껏 뛰어 넘어갔던 기억이 오래 남아 삼촌에 대한 좋은 기억으로 남은 것처럼, 조카들에게 나도 그런 기억이 한 조각이었으면 좋겠다. 나이가 들어 서먹서먹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큰 조카의 엉덩이를 마치 5살 어린 아이의 엉덩이를 귀엽다고 두드려 주는 그 민망함과 애정어림,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고 대견스러움의 엉덩이 스매싱처럼, 자주 못봐도 아끼고 애정함을 우리 조카들도 오래오래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수영강 위의 오래배가 떴다. 연휴가 장사를 하지 않아 덩그러니 강 위를 둥둥 떠있는 뒷꽁무니가 귀엽다. 건너편 아파트단지의 각짐과 대조를 이루는 오리배의 둥글고 예술적인 모양과 몸짓이 겨울의 한 풍경을 더 멋지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오리배를 타고 수영강을 한 번 떠다녀봐야겠다. 조만간. 하늘 위 구름이 길을 내었는데 오리는 움직이지를 못하는구나.
드디어 영화의 전당에 들어섰다. 나루공원을 가로질러 횡단보도를 건너니 바로 여기다. 조금 못 가서 올라가면 신세계 센텀시티, 그리고 그 야외 주차장, 조금 더 가면 영화의 전당이 나온다. 영화의 전당 앞에는 여러 조각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사람들의 피사체가 되어주고 있었다. 잽싸게 달려가 자리를 잡은 조카들 한 컷, 쨍한 날씨 덕에 글자의 흰부분이 너무나도 눈이 시리도록 빛난다.
오늘 해변을 가지 못하면 대성통곡할 듯한 표정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우리 두 조카님들, 이제 해변으로 가자. 그리 찾고 구하고 그리워하던 해변으로 가자. 이모 오늘 손톱도 깎았다. 모래놀이 하러... 이쯤 걸어오니 꽤나 많이 걸은 것 같다. 평소 산책은 1시간 30분에서 2시간을 잡고 걷는 편인데 이 날은 3시반 30분에서 4시간을 걸었다. 왕복으로.. 벤치가 보이니 나도 모르게 무언가에 이끌리듯 다가가 누워버린다. 저기 저 넓고 평평한 I 위에 누워보고 싶다. 사진 몇 컷 더 찍고 휘이 둘러보니 꽤나 뭐가 많다.
다시 그 길을 돌아 왔던 길을 고대로 돌아간다. 나루공원, 시원한 나루공원에서 다리는 피곤해도 마음을 시원하게 뻥 뚫린 것 같은 기분이다. 찬 공기 때문인지, 만 걸음 덕에 올라간 신체 열기 때문인지, 으슬으슬하다가도 다시 더워지고 에너지가 올라가고 내려 감을 느끼게 된다. 산책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몸의 변화를 잘 알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겨울 하늘이 배경이 되니 어느 건물이든, 나무든, 심지어 가로등 까지도 좋은 피사체가 된다. 횡단보도를 건너 영화의 전당 앞을 가니 사람들이 조금 모여있었다. 트랜스포머의 등장인(?)물 들이 아주 무겁게, 무게감있게 자리를 잡고 사람들과 사진을 찍고 있었다. 또 한 쪽에는 공룡시대가... 겨울 빛을 받아 반짝 이는 걸 보니 색이 보이기 시작한다.
간만의 산책은 다시 그 길을 돌아 광안리 해변으로 결국 향했다. 조카들의 해변사랑은 4시간의 산책길의 끝에도 지치지 않았다. 이모들은 돌아가며 조카들의 모래놀이를 함께 해주었고 손재주가 좋은 두 조카의 모래성 작품에 감탄하며 한가로운 Sunday afternoon은 그렇게 마무리 되어갔다. 부산 바다와 이어진 강을 따라 산책을 원한다면 찾아도 좋을 누리마루공원,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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