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 영도 봉래산
부산 영도 봉래산
부산 산.책
부산 영도 봉래산을 찾았다. 5월의 부산은 바람도, 볕도, 기온도 좋다. 사람들 표정도 좋고 미세 먼지로 걱정스런 마음에도 바깥 공기를 마시는 게 그리 싫지 않다. 기왕에 산 속의 공기면 더 좋다. 유난히 비가 많이 오는 올해다. 반갑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지만 빗소리가 그렇게 싫지는 않다. 딱 하루 빼고.. 산에 가기로 약속한 전날, 비가 온다는 예보에 살짝 우울해졌다. 질척한 흙 길을 걸어야 한다니.. 가기도 전에 불편한 마음 한 가득 이었다. 그래도 가지 않으려는 마음 안 먹은 건 기특하다. 새벽 차가운 빗소리를 들으며 눈을 떴다. 전날 늦게 일이 끝나 제대로 준비를 못 하고 잤다. 서둘러 이것저것 챙긴다는 게 놓친 게 더 많다. 동행을 픽업하고 영도로 향했다. 영도, 영도에 가면 잘 나오지 않고 오래 산다는 그 곳, 부산에 가면 영도를 가봐야 한다고 누군가 말했다. 그저 영도사람이 영도에 오라는 내 동네 부심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영도에 도착하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그저 부산대교에서 부산항대교를 타고 해운대에서 광복동을 빠른 시간내에 달리기 위해 영도에 잠시 들렀던 적은 몇 번 있지만 이렇게 영도를 보러 영도의 산에 오르기 위해 온 것은 처음이니까.
왜냐하면.. 고개를 돌리면 바다다. 좁은 길을, 울퉁불퉁, 오르락내리락 길을 걷다가 고개를 돌리면 또 바다다. 진짜 부산바다. 이래도 영도구나. 영도의 매력이다. 부산 영도 봉래산을 오르는 우리의 코스는 "복천사 - 함지골체육공원 - 목장원 - 손봉 - 자봉 - 정상 - 복천사"였다. 복천사 근처에 주차를 하고 산길을 찾는데 자꾸 내려간다. 내려가면 산을 가는 게 아닐텐데.. 싶다가 어느 순간 바다를 마주하곤 돌아가도 좋겠다 싶었다. 평소에도 이런 여유를 가지고 살면 좋을 텐데.. 산에 오를 때는 한없이 여유로워지는데.. 이상하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무언가에 쫓겨 정신없이 하루를 보낸다. 여튼 내리막길에서 만난 바다를 동행은 한참을 바라보더라.
비가 오고 난 새벽 부산 바다는 습기가 낮의 그것과는 다르다. 뭔가 더 가볍고 상쾌하다. 눈을 뜨면 바다가 보이는 곳에 사는 것도 좋겠다. 그런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 쨍한 하늘 대신 쨍한 풍경이 들어온다. 사진에 다 담지 못하는 세상이 있어 기억에 의존할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눈을 감으니 주변이 보이기도 하다.
봉래산
부산광역시 영도구 청학동
396.2M
꽤 가파른 내리막길 끝에 사진 한 장이 걸려있다. 네모반듯한 프레임 안에 바다 위에 뜬 산과 배들이 보인다. 흰여울문화마을 입구다. 반갑기도, 당황스럽기도.. 역시 우린 길을 잘못 온 것이다. 몇몇 사람들에게 이곳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흰여울문화마을에 가보라고, 부산의 산토리니까지는 아니더라도 바다를 끼고 있는 작고 예쁜 마을이라고.. 통영이나 감천문화마을과 같은 분위기일까 생각은 해봤었다. 예고없이, 기대없이 마주하니 더 반갑다.
흰여울문화마을
부산 영도구 영선동 4가 1044-6
흰여울길은 봉래산 기슭에서 여러 갈래의 물줄기가 바다로 굽이쳐 내리는데 마치 흰눈이 내리는 듯, 빠른 물살의 모습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영화 변호인, 첫사랑사수궐기대회(정말~ 엄청~ 오랜만에 듣는 영화), 범죄와의 전쟁 등 많은 작품들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고 하다. 문화, 예술마을로 거듭나고 있다.
관광지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이기도 한 곳인데 뭔가 경계가 무척이나 희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봤다. 곧장 바다가 보인다. 참 좋다. 여러 갈래길이 있는데 우린 영화 '변호인' 촬영지를 향해 걸었다. 가장 바다 가까이 있을 것 같았다. 빛바랜, 바닷바람에, 소금기에 너덜너덜해진 사진 한 장이 우리를 맞이했다. 그래도 반갑다. 이 곳에서 배우 송강호는 허탈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길을 따라 계속 걸으니 그냥 바다 바로 옆 길이다. 아래로 더 가까이 바다산책길이 보였다. 우리의 목적지는 봉래산 정상이기에 아쉽지만 내려다보지 않고 곧장 걸었다. 작은 카페도 있고 카페 앞 벤치에 잠시 앉아서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바다가 보이면 어떨까, 좋을까, 좋을 것 같다며 동행과 이야기를 하다가 일어섰다. 누군가 작은 화단에 뭔가를 키우고 있었다. 곱게, 소중히 보호받고 있었다.
바닷빛깔은 시시각각 변한다. 그래서 언제봐도 좋다. 시간에 따라 빛에 반사되는 그 색이, 가장자리에서 아스러지는 파도의 모습도 가지각색이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다리의 견고함과 위태로움이 상반된 끌림을 가져온다. 한참을 바라보다 걸었다. 구름이 걷히는 듯 하다가 다시 날이 흐려졌다. 빗방울이 떨어지다가 그치기를 반복했다. 아직 산에 발도 들이지 못했는데..
벌써 허기가 졌다. 급히 나오느라 챙겨오지 못한 꿀떡이 자꾸 생각나 동행에게 괜히 짜증을 부려본다. 길을 잘못 든 탓에 돌아돌아 다시 산길로 향했다. 덕분에 영도바다를 더 가까이 만났다. 사실 이 곳을 걷지 않았다면 영도바다를 제대로 보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산 위의 사정이 좋지 않았다.
편백림이다. 편백림이 나는 참 좋다. 크고 곧게 뻗은 나무숲 사이를 걷는 것도 좋고 피톤치드 뿜뿜해 건강해지는 느낌도 좋다. 영도 봉래산에서 만난 편백 숲도 좋았다. 자연은 참 많은 색을 가지고 있다. 5월의 숲색은 초록이 다가 아니다. 연두색? 약간 야광색에 가깝다. 사진을 살짝 보정하긴 했지만 내가 본 야광빛 초록숲의 색이 잘 나왔다. 이질적일 것 같지만 너무나 자연스럽다. 비를 맞아 더 짙어진 편백나무의 단단함이 든든하고 고맙다. 산에 와서 위로받는 기분.. 참 좋다.
산 위의 사정은 좋지 않았다. 손봉과 자봉을 지나 봉래산 정상에 올랐을 때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손봉을 지날 때 부터 주변은 안개로 가득찼다. 아쉬웠다. 정상도 그럴까 기대를 걸어보았지만 여전했다. 제주도 한라산을 올랐을 때 백록담을 보지 못하고 내려왔을 때 그 잔잔하게 남은 아쉬움과 같다. 여튼 무사히 내려오는 것을 목표로 바꾸고 우린 이조차 좋고 감사함을 이야기하며 걸었다.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인사도 하고 서둘러 가는 사람들의 등에 불꽃 눈빛 쏘아보기도 하고.. 괜히 힘들고 심술이 나서ㅎ
영도 봉래산 정상에 올라 영도를 둘러 보진 못했지만 습기 가득한 숲길을 걷는 색다른 경험을 한 것으로 만족하며 내려왔다. 산행 후 먹는 식사는 정말 꿀이다. 뭘 먹을지 고민하는 것부터 숟가락을 내려놓을 때까지, 이렇게 '식'에 감사한 순간이 또 있으랴. 시원하고 습한, 차가운 산 공기가 벌써 그립다.
추천글
[여행생활자] - 네팔 포카라 : 히말라야를 가기 위한 그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