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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포카라
히말라야를 가기 위한 중간기점
2009.12.30.
네팔 포카라로 가는 길은 정말 고난의 연속이었다. 도심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버스와 불편한 버스좌석,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들이 그랬다. 여행의 초반이었다면 충분히 그들의 호기심과 낯섬을 이해하지만 여행의 중반을 넘어서는 그때, 피곤이 극에 달해, 신경이 예민해진 상태에서 그들의 반질반질한 짙은 피부와 그와 대조되는 새하얀 눈을 만날 때는 왠지 모를 짜증이 일어났다. 몇 번을 갈아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차를 탔다. 침대칸이었다. 2층 침대칸에서 덜컹거리는 기차와 그 바닥의, 그 땅의 모든 것을 만나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새우잠을 잤다. 나보다 더 예민한 선배와 힘내자는 농담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보았지만 그조차 도움이 되지 않을 무렵이었다. 기차에서 내려 이제는 버스를 탄다. 악! 8,9년 전 인도의 버스는 많이 불편했다. 도심을 빠져나오는데에도 부산-서울 편도시간이 걸린다. 버스로 말이다. 4,5시간여만에 도심을 빠져나온 버스는 덜컹거리는 도로를 달린다. 비포장도로와 포장도로를 번갈아가며 달리지만 대부분은 비포장도로다. 딱딱한 버스좌석과 화장실 사용의 불편함은 말로 할 수 없지만 반쯤 닫히다 만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만큼은 값지다. 여행의 값진 순간은 풍경을 마주할 때다. 사람의 풍경이든, 자연의 풍경이든, 도시의 풍경, 시골의 풍경이든.. 그것은 무엇이든 값지다. 늦은 밤 숙소에 도착해 겨우 자는둥 마는둥 하고 다시 새벽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는다. 외국인이 나와 선배 둘 밖에 없었던 포카라행 버스에서 우리는 인도인들의 친절을 만나기도 했지만 자신의 새벽잠을 깨운 동양인 여성 2명에게 무례하고 비합리적인 국경의 모습을 보여준 국경심사원도 만났다.
끝도 없이 펼쳐지는 숲과 그 끝이 정말 보이지 않는 숲 안쪽 묘한 안개와 굽이굽이 포카라를 향해 달리는 절벽길은 잊을 수가 없다. 혹여라도 절벽 아래로 떨어질까 두려워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버스기사는 마치 눈감고 운전할 수 있다는 듯한 표정, 제스처로 곡예를 하듯 우리를 포카라로 데려다주었다.
포카라는 네팔 제2의 도시이지만 수도인 카트만두에서 200km나 떨어져 있고 무엇보다 8000m가 넘는 고봉들로 둘러싸여 있어 접근이 쉽지 않다. 그럼그럼, 히말라야를 가려면 거쳐야 하는 그곳인데 암! 맞다. 포카라는 오지다. 길고 긴, 힘들고 힘들었지만, 도착한 네팔 포카라는 그 여정을 깨끗히 잊게 만들어줄 만큼 맑았다.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마침 축제기간 이었을까 마을초입에는 사람들이 모여 게임 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 히말라야를 가는 세계인들의 발걸음 속에 내 발도 슬쩍 밀어넣어보았다. 이 곳의 평화로움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럽게, 예의를 갖춰 비집어 넣어본다.
포카라 페와 호수. 페와 호수는 포카라 남쪽에 위치한 호수로 면적이 약 4.4제곱키로미터에 이른다. 네팔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이다. 해발 800m 높이에 위치하고 있어 공기가 확실히 다르다. 페와 호수의 특별함, 바로 우리가 가려는 그 곳, 안나푸르나 등 히말라야 설산에서 녹아 흘러내린 물이 보인 호수라는 것이다. 호수 동쪽 레이크 사이드는 호텔, 식당, 상점들이 늘어서 설악산 앞에 가면 늘어서 있는 상점풍경을 연상케 한다. 좀 더 이국적으로.. 페와 호수 중앙에는 작은 섬이 있는데 힌두교 사원인 바라히 사원이라고 한다. 저기서 배를 타보자고 무슨 용기인지 덜컥 내질렀다. 내 고향 부산 광안리에서 보트를 타고 노를 저어본 적 있다며.. 꽤 잘 저어서 멀리까지 가본 적이 있다며.. 선배가 웃었다. 탈 거라는 거다.
짐을 재빨리 풀고 여기저기 한글도 보인다. 한국식당도 눈도장 찍어놓고 나중에 찾아 먹겠다고 다짐한다. 이때는 여행의 중반이라 입맛이 인도 커리와 짜이, 향신료에 많이 익숙해져서 한국음식이 그리 그립지 않았을 때였다. 근데 웬걸, 한국식당의 푯말을 보자마자 입안에 군침이 돈다. 삼겹살이라니.. 이곳 오지 포카라에서 삼겹살을?? 믿을 수 없지만 믿을 수 없는 일은 간혹 일어난다. 히말라야를 오르기 위한 포터를 구한 숙소에는 방이 없어 미리 찜해두고 다른 숙소를 찾았다. 수줍음이 많은 네팔 현지인의 모텔급 숙소였는데 나름 괜찮다. 짐을 풀고 나섰다. 동네구경해야지. 그리고 페와 호수에 몸을 맡겨봐야지.
빨,초,노,파의 쨍한 호수의 풍경처럼, 쨍한 보트의 옷색이 참 곱고 이쁘다. 호수의 빛깔과 잘 어울린다. 서서도 잘 탄다. 대단하다. 배를 타러 내려가는 것부터 고비다. 그래도 물인지라 수영의 수자도 모르는 나로서는 굉장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노를 젓는 재미를 맛보았기 때문에 그것도 이곳 포카라 페와호수에서 그 재미를 놓칠 수가 있겠는가. 선배에게 나 자신있다 외치며 따라오라고 했지만 후들거리는 다리는 어쩔 수 없었다.
바다의 도시에서 살고, 바다지척에서 살고 있으며, 늘 바다를 보는 나로서 이렇게 가까이 바다, 강, 물을 들여다볼 기회는 없다. 일상적인 것이기에 더 대충, 물 흐르듯 본다. 보트에 타서 가까이 페와호수의 깊이를 온 몸으로 느끼니 소름이 돋는다. 깊다. 이 물이 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설산에서 내려와 모였다니, 손을 넣어 느껴보고 손 등 위로 물이 흐르는 것도 지켜본다. 어릴적부터 피아노를 배울 때 왼손과 오른손이 따로 놀아 늘 연습시간이 더 걸렸다. 이번에도다. 왼쪽 노와 오른쪽 노를 함께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다. 특히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때는..
페와 호수의 중간으로 가서 하늘을 바라보니 새삼 이 곳이 넓고 깊음을 깨닫는다. 물을 맑고 짙다. 우리가 만난 안나푸르나 그곳은 더 하겠지. 심장이 쿵쿵쿵쿵 한다. 노 잡고 사진 찍으랴, 호수보랴, 저기오는 보트 보랴. 아주 정신이 없었다. 지나가는 보트 손님이 나에게 엄지를 척! You Great! You Do Very Well! 노를 잘 젓는단다. 선배와 눈이 마주치고 이거보라며 어떠냐는 제스처를 취했더니 선배가 깔깔 웃는다. 기분이 정말 좋다. 세상과 동떨어져, 온갖 근심과 걱정, 그 당시 취업과 내 인생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을 때였는데 그 모든 것을 떨어 뜨리고 하늘에 붕 뜬 기분, 기분 좋은 기분이었다. 힘들어서 안 되겠다. 바통 터치!
페와 포수의 중간으로 오니, 그 높디높다는 설산도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 빽빽이 푸르게 자리 잡은 물가 근처의 나무들은 장관이다. 평화롭게 흐르는 호수의 물길이 내 맘과 같아 자연을 보면 이리도 편해지는 것을, 옛 선조들은 그리 자연을 벗삼아 노닐었나보다. 이제 두려움이 어느 정도 가시니 수다가 터진다. 오늘 저녁을 뭘 먹고 가기 전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어제는 코를 좀 덜 골았느니, 삼겹살은 언제 먹을까요 등등 이런 저런 이야기로 시간이 흐른다. 호수의 물이 흐르는 시간과 같이 흘렀다.
점점 보트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우리도 제자리로 돌아가야 함을 느끼며 잠시 호수 위에 떠 있었다. 보트 위에 있었지만 왠지 호수 위에 그대로 누워있는 기분이 들었다. 두려움과 설레임, 어울리지 않는 감정들이 솟구쳐 정신이 아찔하다. 다시 바통터치! 멋지게 처음의 그 곳으로 돌아간다. 노와 호수 물이 만나는 소리를 가만히 귀기울인다. 아무 소리가 없어 평화롭고 조용한 것이 아니라 물과 물이 만나는 소리, 새소리와 바람 소리가 만나서 나는 소리, 노가 물을 가로지르는 소리, 삐걱이는 세월을 가늠하게 만드는 보트의 움직이 내는 소리 들이 모여 평화롭고 조용한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그 가운데 나도 평화롭게 그 곳에 있었다는 사실은 지금도 나에게 위안과 위로가 되어준다. 여행의 묘미를 알려주고 싶은 사람들이 몇몇 떠오른다. 내가 경험하는 여행의 묘미를..
호수 바깥으로 향하면 점점 더 조용해진다. 더 작고 조그마한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한다. 아주 조그만 몸집을 가진 새일거라 생각되는 새의 노래소리도, 나무 바스락거림도, 저기 간간히 튀어 오르는 물고기의 파닥거림도, 다 소리로 다가온다. 나는 앞으로 가고 있는지 뒤로 가고 있는지 모를 때가 있다. 이때는 그 어디라도 괜찮은, 아무렇지 않은, 아니 뒤로 가고 있다 하더라도 다시 앞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고, 조금 늦어도 괜찮은 여유있는 마음이었다. 지금은 그게 아니니, 참 씁쓸하다. 꼭 거기가 아니어도 여기도 여행의 한 가운데 인데 마음 먹기가 쉽지 않다. 여튼 세상에 볼 거, 먹을 거, 들을 것이 많다.
페와 호수 중간에 떠있는 힌두교 사원이 보였다. 사람들이 배를 타고 왔다갔다 하는 것이 보였다. 보트타고 저기까지는 가면 안된단다. 자신있었지만 자중하고.. 멀리서나마 바라봤다. 한 밤 중 저 사원 안에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며 호수 가운데 푸르름을 발하고 있는 나무에게도 눈길 한 번 쓰윽 주고 돌아가야겠다.
"선배님, 고마워요. 함께 여행가줘서.. 열심히 노 저어줘서 고마워요. ㅎ 잊지 못할 시간, 두고 두고 떠올릴 시간들 갖게 해주어 고마워요."
포카라를 만나고 첫 날은 무사히 흘러갔다. 우리는 곧 히말라야에 간다.
가슴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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