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여행생활자

제주 한라산

bigapple52 2018. 2. 17. 00:30


제주 한라산

2018


일년에 한 번 제주 한라산을 오르면서 새해를 시작하는 것이 나의 목표이자 나의 성공파트너들과의 약속이었다. 비록 올해가 두번째이고 언제까지 함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두 번째 겨울 한라산을 오르기 위해 비행기와 숙소를 정하고 정말 제주를 밟았을 때는 정말 왔구나 실감이 났다. 비록 작년의 멤버들이 모두 함께 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그들의 이름으로, 우리의 이름으로 함께 할 수 있어 기쁘고 감사했다. 작년만 해도 제주도에 오면서 한라산만 보고 가는 것에 아쉬움이 남았지만 올해는 작년의 경험을 통해 몸을 보하고 등산을 준비하고 피로를 회복하는 것이 얼마나 중한지 알고 설레발을 떨지 않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역시나 적시나 이놈의 여행본능은 다시금 살아나 마음과 발을 동동거리게 만들었다. 김희선몸국을 먹으러 내달린 그 곳엔 일요일 휴무가 우리를 맞이했고 그럭저럭 근처 몸국과 고기국수도 맛보았지만 약간의 아쉬움은 남았다. 여기저기 제주에 우리가 다시 왔음을 도장찍고 숙소로 돌아와 가벼운 맥주와 제주 한라산 미리 맛보고 잠을 청했다. 잠이 올까 싶었지만 웬걸, 3초만에 잠들었다.



알람소리에 잠이 깬 건지 누군가 깨워 줘서 깬 건지... 알 수 없지만 비몽사몽으로 옷을 챙겨입고 그래도 두번째 한라산 등산이라고 짐싸고 준비하는 것이 제법 손에 익는다. 2017년 1월 15일 이후로 진달래밭 대피소 매점이 파업을 하여 컵라면과 진한 믹스커피 한 잔 먹을 수 없기에 각자 한개씩 챙겨온 보온병과 스프, 모닝빵, 간식거리, 함께 하지 못해 아쉬워 배웅 온 동료가 챙겨준 밀감 한박스 나누어 담고 출발했다. 밤새 눈이 내린 제주도의 새벽 풍경은 신비롭다 못해 무섭기까지 했다. 작년 새벽 성판악까지 가는 길에 안개가 자욱하여 비상등을 켜고 40분을 달렸었다. 올해에는 눈이 와서 도로가 미끄러워 제대로 달릴 수가 없었다. 숙소에서 나오는 길은 눈이 쌓인 길에 첫 자국을 내는 귀한 기회를 얻어 결국 눈길에 헛바퀴질을 했다. 운전자빼고 모두 내려 차를 미는 사태까지 왔지만 가까스로 언덕길을 가뿐(?) 올라 성판악으로 갈 수 있었다. 해가 뜨기 2시간 한참 전, 제주의 새벽이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설렘 반, 두려움 반, 두번째라는 자신감과 무사안녕을 바라는 마음, 두고 온 마음들과 일거리들, 사람들 얼굴이 떠올라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해가 뜨려면 한 참이나 남았다. 금방 오지 않을 아침이 이렇게 기다려질수가 있을까.



스패츠와 아이젠을 차고 모자와 마스크로 중무장을 한 뒤, 등산스틱을 키에 맞추고 성판악입구에서 바로 작년 그 자리에서 기념샷 찍은 뒤 출발했다. 작년에는 비가 와서 눈이 녹아 아이젠을 차고 돌길을 오르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욕나올 정도로... 이번에 눈이 많이 내려 아이젠을 찬 보람이 있었다. 과연 보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여튼 아이젠을 한 번도 빼지 않고 올라갔다 내려왔으니 본전은 뽑았다. 웰케 한국인들은 본전 생각을 할까.. 다시 그 길로 돌아가서... 눈이 내린 한라산은 정말 아름다웠다. 해가 뜨지 않아 어두운 그 길을, 눈이 쌓여 환한 그 길을 나의 숨소리에 의지해서 걸었다. 벌써부터 힘이 들고 헉헉댔지만 뒤쳐지지 않으려고 앞사람을 집착하듯 쫓아갔다. 서서히 아침이 오고 눈을 들어보니 제주 한라산, 그 설산의 한 가운데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여기다. 여기왔다. 다시 한라산에 왔다. 




작년의 모습 그대로다. 옷도 장비도 단, 사람만 한 살 더 먹었다. 아차, 한가지 더 달라진 게 있다면 작년 등산 스틱 하나로 정상까지 가느라 정말 힘들었다. 그래서 큰 맘먹고 등산스틱 2개 세트 구입, 드디어 겨울등산 완전체를 이루었다. 으하하하하!



눈을 점점 깊어졌다. 이미 성판악에서 출발할 때 진달래밭까지만 갈 수 있다고 들었다. 정상은 눈이 많이 내려 통제되었다고... 아쉬었다. 작년에도 백록담을 보지 못했는데... 정상까지 올라갔지만 눈보라가 심해 잠시 몸을 가누고 있기도 힘들었다. 겨우 그 돌석 앞에 기념샷만 찍고 내려온 것이 두고두고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정상까지 가지도 못한다니.. 사실 아쉬움 80, 안도감 20이었다. 작년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올라갔다면, 것도 이제 경험해보았다고 힘이 든건 왜인지.. 힘이 드니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바닥만 보고 걷다가 겨우 눈을 들어 보니 겨울나무가, 겨울가지가, 겨울 잎이 보인다. 아이고 춥겠다. 꽁꽁얼어 시간이 멈춰버린 그 곳에서 얼마나 오래 추웠을지, 잠시 장갑을 벗어 사진을 찍으려는 내 손도 이렇게 금새 차가워지는데 겨울내 꽁꽁 얼어 있다가도 싹을 피우는 자연의 신비가 말 그대로 다가왔다. 


Hello, there!!

거기 잘 오고 있나요?

저는 잘 가고 있어요!

언능 와요!



1시간 40분 쯤을 가면 나오는 솔밭대피소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그 곳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언제 올라왔단 말인가. 파업 이후 관리인이 없는지 생각보다 대피소 상황이 많이 좋지 않았다. 쓰레기는 되가져가기 가야 한다. 솔밭대피소를 보니 이제 반 가까이 왔구나 싶었다. 이번엔 진달래밭까지만 갈 수 있으니 절반은 온셈이다. 야호! 겨울 등산 중에 귤 하나 까먹으면 온 몸에 수분이 쫘악 공급되는 느낌이 든다. 갈증도 해소하고 상큼함이 힘듦도 달래준다. 



참 예쁘다. 고요하고 하얀 겨울산 가운데 서 있는 기분이란 있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겨울산이라곤 한라산이 유일하지만 어디든 이만큼 아름답다면 한걸음에 가리라. 10여년 전부터 꼭 한번 오고 싶었던 제주 한라산을 드디어 밟았을 때의 감흥은 말로 할 수 없다. 눈이 쌓인 겨울산에서 나무와 눈을 바라보는 기분은 형언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겨울산에는 힘이 있다. 잎이 다 떨어지고 바람에 날릴 것도 없지만 눈으로 꽁꽁얼은 나무가지 하나하나가 무척이나 강인해 보인다. 눈꽃. 진짜 눈꽃을 볼 수 있다. 눈꽃이 이리도 크다니..



금방 무엇인가 튀어나올 것 같다. 근데 그 무엇인가가 아름답고 신비한 것일거라.



겨울왕국의 안나가 엘사를 찾으러 가는 그 길인 것 같기도 하고 백설공주가 일곱난장이를 만나는 그 숲의 겨울버전인 것 같기도 하고 저 멀리 길 위에 울라프가 서서 나를 반겨줄 것만 같은... 이런 저런 생각이 아닌 아무 생각없이 산을 오르는 나를 만나는 것도 좋다. 



하늘을 향해 갈수록 나무는 더 희어진다. 회색 빛의 겨울산이 점점 색을 바꿔가기 시작한다. 



참 곱다. 차갑고 시원한 느낌이 좋다. 곧 푸르를 필요 있겠는가. 희고 시린 느낌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 



점점 하얀 설산으로 들어간다. 정상이 가까워진다는 뜻이겠지.



진달래밭 대피소에 다다랐다. 우릴 반겨주는 빨간 깃발과 겨울풍경과 바람이 너무나도 세차게 반겨준다. 손을 흔들지 않을 수 없다. 악수하자고 손을 자꾸 잡아 끈다. 



드디어 도착! 진달래밭 대피소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에 드러누워 러브스토리 혼자 찍어보고 눈도 뭉쳐보고 한껏 눈을 만끽하고 대피소로 들어갔다. 주린 배를 가볍게 채우기 위해서...






컵라면이 없으면 없는대로 스프와 모닝빵을 챙겨갔다. 보온병에 담아간 따뜻한 물에 스프를 풀어 샥샥 녹여 빵에 찍어 먹으니 꿀맛이다. 컵라면을 챙겨온 사람들도 많았다. 대피소는.. 정말 정신이 없었다. 컵라면보다 오히려 따뜻하고 편안한 스프와 모닝빵의 조합이 꽤 괜찮았다. 두개씩 후루룹 하고 귤로 입가심 후 남은 물로 믹스커피 한 잔 만들려고 했는데 웬걸, 깜빡하고 챙겨오지 않았다. 오 마이 갓, 이렇게 아쉬울수가요.





한라산에 올라 한라산을 보니 반갑구나. 조금만 기둘리렴. 내려가서 한 잔 하자. 




하산길은 더 힘들다. 풀려버린 다리에 힘을 바짝 주고 걸어본다. 간간히 빛이 비출 때 눈 위로 수를 놓는 그림자들의 모습을 보며 힘을 얻었다. 잠시 기다렸다 사진을 찍으려니 금새 그늘이 진다. 



저기 누군가 눈사람을 만들어두었다. 다가가 인사하기에는 힘들어 멀리서 눈인사만 주고 받는다. 다음에 또 보자. 




정상을 가지 않아 생각보다 일찍 하산했다. 성판악 매점이 보이니 마음이 금새 풀린다. 마음이 말한다. 잘했다. 수고했다. 대견하다. 애썼다고.. 내년엔 백록담 보러가리라. 



추천글

 제주 가볼만한 곳 : 제주 산굼부리

 제주 눈꽃여행 : 몸국과 동백꽃

 제주 카페거리 : 월정리 LOW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