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자갈치 생선구이
일상미각기행
내 고향 부산은 바다가 사방에 있어 조금만 달리면 바닷내음을 맡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자갈치, 남포동, 광복동이 있는 중구를 좋아한다. 옛스럽기도 하고 정감가기도 하고 나의 10-20대의 기억이 그 곳에 많기 때문이다. 부모님 생신을 맞아 내려온 작은 언니네와 함께 이여사님 안경수리도 할 겸 광복동을 찾았다. 간 김에 자갈치 구경도 하자셔서 그러자 하곤 따라나섰는데.. 이 곳에 이런 곳이 있는지 그동안 잊고 살았었다.
5월의 뜨거운 직사광선 직각으로 내리쬐는 한 낮이었는데 자갈치 시장 안은 형형색색 다채로운 파라솔로 가득했고 그 위에 내치쬐는 빛은 울긋불긋 햇볕도 차단하고 북적이는 사람들의 얼굴에 생기를 불어넣어주고 있었다. 20살의 나는 도시의 사람들이 깨기 전, 이른 아침을 준비하는 시장 상인들의 민낯을 찍다가 많이 쫓겨났던 기억이 난다. 불과 10여년 전인데, 그때의 사람들은 무례한 20살의 어린 학생이 들이미는 카메라가 참 불편했을 것이다. 어리석은 나 역시 그게 예술이라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거라며 생각했던 철없는 아이였다.
생선 가득, 사람 가득, 이리오라 저리오라 손짓하는 사람들에 치여 슬 지쳐갈 때쯤, 생선구이 집에 들어갔다. 자갈치 시장 안에는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크고 푸짐한 생선구이집이 늘어서 있다. 처음이었다. 성인남성 손바닥보다 더 큰 생선을 가득 쌓아 굽고 팔고 있는 가게들이 꽤 많았다. 적당한 곳을 들어가서 모든 생선을 주문하면 꽤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 가격은 저렴하진 않지만 분위기를 낼 만하다. 1인분도 먹을 수 있으니 혼족들도 이용하기에 어려움이 없다.
생선 이름은 외우다 말았다. 고소하게 노릇하게 구워진 갓 생선이 투박스럽게 큰 접시에 담겨 나왔다. 여덟 식구 나누어 먹으려니 생선의 종류도 많고 크기도 다양하다. 그 중에 아는 거라곤 가물치, 갈치, 고등어, 빨간고기...다. 사실 이름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집 밥상에서 볼 수 없는 크기에 놀라 눈이 휘둥그레져 한참을 쳐다보았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은 찾는 이 곳 자갈치 생선구이 거리엔 능수능란한 아줌마 직원들이 일사분란하게 서빙을 해준다. 그 와중에 성질 급한 아버지는 기어이 소주를 냉장고에서 꺼내오셨다.
그저 크기만 큰 줄 알았는데 맛도 좋다. 뼈를 살살 발라 먹으려니 여간 귀찮은 게 아니지만 생선구이는 그 만큼의 보람이 있다. 갈치와 고등어는 고만고만 했는데 가물치! 내 입에 딱 맞았던 가물치, 흰살생선이었는데 색이 그저 흰색이 아니라 뽀얀 흰색이었다. 뜨끈하게 구워져 나와 젓가락으로 뼈를 대고 발라 내어 흰 쌀밥 위에 올리니 맛이 기가 막히다. 이게 제일 맛있다고 연신 이야기를 하니, 나중에 이여사님이 슬쩍 사라지셨다가 한 손에 검정 봉지 무겁게 들고 나타나셨다. 가물치다.
생선구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민물장어도 있는데, 양념장어를 주문하니 이렇게 포일이 싸여 팬 위에 올라간다. 비져나온 대파 조금이 애처롭다. 간이 충분한대도 장어냄새에 심심해져 칼칼한 장어양념으로 입에 군침이 돈다. 사실.. 지금도 입에 군침이 돈다. 참 대단하다. 뇌는 이토록 멍청하다니.. 그런데 배는 고프니, 이 또한 아이러니다.
나의 똥강아지들, 조카들도 맛있게 생선을 먹는 걸 보니, 기특하다. 똥기저귀 갈아주었던 녀석인데, 이젠 제법 젓가락질도 잘 하고 생선도 발라 먹는다. 참 세월 무색하게.. 우리 아버지가 날 보면 그렇겠지.. 입 맛 까다로운 아버지와 이여사님 함께 식사 다니기 싫어 피했었는데 이젠 그러지 말아야겠다. 생선구이도 맛있고 이런 시간이 또 얼마나 있겠는가. 누가 그러더라 돈이 있어 돈을 쓰고 싶어도 같이 쓸 수 없는 시간이 온다고...
맛있게 먹어~
제 모습을 드러낸 장어구이와 칼칼한 양념에 밥 한번 쓱 비벼 먹으니 배부름이 참으로 불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엔 먹을 것이 많고 맛봐야 할 것이 많고 즐겨야 할 것이 많은데 늘 시간과 위장의 소화력, 에너지와 돈이 장애가 된다. 매일 새로운 것을, 메뉴를, 미각의 즐거움을 추구해야 한다. 오늘은 오늘일뿐일테니까.
부산을 찾는다면 자갈치 생선구이 거리도 찾아 볼 만하다. 푸짐하게 한끼, 시끌벅적한 시장풍경을 만나고 싶다면!
추천글
[일상미각기행] - 해운대 해목 : 나고야식 장어덮밥전문점
'일상미각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광안리 딱새우 (0) | 2018.06.11 |
---|---|
해운대 해목 : 나고야식 장어덮밥전문점 (0) | 2018.06.08 |
부산 회 : 광안리 바다산책 (0) | 2018.06.01 |
[누들로드] 기장 호타루 (0) | 2018.04.11 |
해운대 좌동 맛집 "백식당" (0) | 2018.03.06 |
- Total
- Today
- Yesterday
- 영화후기
- 2018 평창동계올림픽
- 부산맛집
- 전시
- 부산카페
- f1963
- 제주 2박3일
- 코칭
- 이마트 휴무일
- 전시회
- 제주도
- 제주여행
- 부산전시
- 평창동계올림픽
- 우동맛집
- 사려니
- 평창올림픽
- 해운대 맛집
- 제주
- 1월 제주여행
- 영화감상문
- 제주숙소
- 성산일출봉
- 네팔여행
- 인도여행
- 부산산책로
- 여행
- 기장해안로
- 부산여행
- 제주여행 2박3일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