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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 마이 네임 이즈 폴 스미스 [HELLO]

전시 리뷰 & 내 맘대로 이것저것

 

두 달에 한 번 서울을 간다. 일 때문에.. 전보다는 많이 줄어 두 달에 한 번이지만 몇 년 전만 해도 한 달에 두 번을 왔다 갔다 한 적도 많았다. 피곤함 보다 설렘이 더 컸다. 서울 출장 가는 직장인의 기분이랄까. 겉멋만 잔뜩 들어서.. 그땐 그랬다. 그런데 이젠 다음 날 몸져누워야 한다. 이건 체력의 문제인 것인지, 마음의 문제인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사실 잘 알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 출장의 가장 좋은 점은 오후 회의에 참석하기 전 오전 시간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남들이 말하는 '지방'사람이라 그런지 서울의 활기와 북적임, 정리 정돈됨이 좋다. 무엇보다 이런 전시들이 많고 많아 고를 수 있다는 것이 좋다. 이번에는 무슨 전시를 보러 가볼까 고민하는 짧은 시간이 즐겁다. 

 

 

 

 

이번에는 폴 스미스 전시를 보기로 정했다. 다채로운 색을 사용하면서도 세련된 색감과 패턴이 좋다. 이번에 DDP 개관 5주년 기념 특별전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뭔가 귀엽다고 할까, 핑크핑크한 브로셔 속 폴 스미스의 표정과 제스처가 재미있다. 전시장인 동대문 디자인플라자는 날 좋을 때 가벼운 산책과 커피 한 잔 하기에 좋은 곳, 한 바퀴 돌아보니 넓다 못해 뒤꿈치가 아리다. 여하튼 전시장을 겨우 찾아가 티켓을 끊고, '한 명이요.' 이 말은 언제쯤 익숙해질까. 하하. 자동문 앞에 서니 문이 열린다. 오!

 

Paul's Office. 폴 스미스의 사무실. 런던 코벤트 가든에 있는 사무실을 옮겨놓은 것이라고 한다. 많은 물건으로 가득차서 제대로 앉아본 적이 없다고 한다. 세계를 여행하며 수집한 것들, 익명의 팬들로부터 받은 선물과 편지들, 디자이너에게 선물을 준다? 생각지 못했다. 그저, 아이돌이나 좋아하는 배우에게 선물을 하는 거라 생각했다. 나이가 좀 더 드니, 그 조차도 번거롭고 나잇값 못하는 행동이라 생각하다니, 스스로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작품을 깊이 있게 감상하고, 열광하고, 영감을 받고 그에 감사하고, 참 단순하지만 순수한 행위인데 그 행위에 나이 제한을 두어버렸다니.. 폴 스미스에게 나에게 영감을 준 것에 대해 감사의 선물을 보내야겠다. 올해 안에...

 

 

 

 

'아이디어는 어디서나 나올 수 있다' 

당신은 모든 것에서 영감을 받을 수 있다. 멋진 말이다. 요즘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 지 모를 때가 많다. 정신없이 해야 할 일과 하기 싫음에 몸부림치는 일, 아무 생각 않기 위해 먹거나 TV를 보거나, 일을 핑계 삼아 카톡을 하고 있거나, 모든 것에 열려 있기보다 모든 것을 닫아놓고 삐져나오지 않도록,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현상을 깨끗하고 고용하게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전시회에 가는 것이 좋다. 그냥 마음이 열린다. 이 사람 말도, 저 사람 말도, 이 그림도, 저 조각도, 이 더위도, 저 추위에도 말이다. 영감을 얻기 위해 어디 멀리 갈 필요 있는가. 근데 나는 서울까지 왔다. KTX 타고, 2시간 45분 걸려서.. 

 

폴 스미스에게는 다양한 수식어구가 붙는다. 그 중에서도 '위트 있는 클래식 스타일', '영국다움'의 리테일러 등등, 왠지 수식어구에 우아함이 느껴진다. 위트가 있는데 클래식하다니,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단어의 조합이다. 여하튼, 처음 폴 스미스의 작품 혹은 제품을 봤을 때 느껴지는 그 경쾌함 뒤에 클래식함이 좋다. 

 

늘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는 폴 스미스. 아마추어 사진가였던 아버지의 사진에 영감을 받아 제작한 티셔츠, 쉬이 도전하기 힘든 작품이다. 하지만 추억의 아련함과 덥지도 쾌적하지도 않은 뜨뜨미지근한 해변의 온도가 느껴지는 것 같다. 추억이란 이리도 무서운 것이다. 영감이란 어디서든 얻을 수 있는 것이고. 폴 스미스는 남성 패션으로 시작했다. 그의 첫 번째 가게를 재연해 놓은 곳에 들어갔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천장과, 360도 멋지게 턴을 하다간 선반 모서리에 박을 지도 모른다. 작고 소박한 가게에는 그의 위트 있는 색감의 옷들과 엉뚱한 기발함이 가득했을리라. 일주일에 이틀을 열고 나머지는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해야 했을 그에게 이 공간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그에게 영감을 주는 형형색색의 00이다. 가까이서 보니 바로 '단추'이다. 어쩜 이리도 색이 다른데 멀리서 보면 같아 보일까. 그의 작품 속 생기발랄한 색감과 모던함이 좋다. 특히 그 스트라이프! 패션에 대해선 아는 게 없지만 보는 눈은 있는지라 눈에 들어오는 게 썩 나쁘지만은 않다. 무난한 몸뚱아리가 아니어서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옷에 쉽게 손 뻗을 순 없고 이리저리 고르고 찾아야 하지만, '눈'만큼은 아름답고 특별하고 나의 취향을 곧잘 찾아낸다. 이 단추처럼 말이다. 그 속에서도 눈에 띄는 무언가가 있다면 말이다.

 

폴 스미스의 대중성이 좋다. 주로 타겟팅 하는 연령층은 모르겠지만.. 패션을 잘 모르는 나에게도 눈에 잘 띄는 거라면 대중적인 편 아닐까. 여리 저기 컬래버레이션도 많이 하고 나름의 특별한 개성을 가지고 있어 알아차릴 수 있는 그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레이카와 콜라보한 카메라, 축구 유니품과의 콜라보, 자전거, 생수 에비앙, 가전/주방용품 등 실로 다양했다. 그중에 가장 눈이 갔던 제품은 카메라.. 그리고 바로..

 

 

 

절대 시내에 타고 가고 싶진 않지만 멋진 차고에 멋지게 보관해놓고나 넓디 넓은 거실을 가질 수 있다면 거실 한편에 전시해놓고 싶다. 예전에 한 번 꿈꿨던 나의 집에는 전시장처럼 천장이 높고 넓은 거실이 있다. 생활공간이라기엔 비효율적인 공간배치와 작품 전시, 공간 공간마다 의미와 분위기, 시간을 부여하고 미로 같은 벽과 결코 과하지 않은 조명으로 장식된 곳이었으면 한 적이 있다. 누구나 한번 경험해봤을까. 미술시간, 내가 그린 스케치를 칭찬해주신 미술 선생님은 칠이 끝난 최종본을 보곤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래서 항상 칠을 하기 직전이 두려웠다. 지금도 옷을 사거나 물건을 살 때 색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 DP 되어 있는 대로 혹은 가장 안전하고 눈에 익은 색을 선택한다. 무채색을 즐기는 나에게 폴 스미스의 색의 세계는 정말 다채롭다. 눈이 즐거울 만큼. 

 

세계 곳곳 팬들로부터 받은 선물들을 벽 한 켠에, 마치 진공상태의 네모 반듯한 공간 안에 공중에 띄워 놓았다. 마치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 같은, 물건들에 붙어 있는 우표들이 뭔가 의미가 있나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그냥 물건에 우표 하나 달랑 붙여 날아온 선물도 있었다고 한다. 폴 스미스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란, 나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란, 세상 모든 것이 될 수 있을 거다. 저 자전거와 저 코끼리와 저 볼링핀과 저 메뚜기와,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은 장면이다. 

 

 

 

EVERYDAY IS A NEW BEGINNING. 매일이 새로운 시작이다. 사실 요즘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작은 아티클 하나에도 뭉클한 감정이 올라올 때가 있다. 국어 모의고사 지문을 읽다가 감동에 빠진 학생을 만나본 적이 있는가. 얼마 전 만난 친구는 친절하게 그 지문이 어떤 것인지 찾아 보여주기까지 했다. 맞다. 나는 매일의 순간순간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있다. 창조적인 일이란 어떤 것일까. 아는 것을 더 잘 아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바꾸어 보고, 다르게 시도해보고, 더 나은 결과를 만들거나, 더 좋은 방향으로 가는 것이라면, 일단 지금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매일이 새로운 시작이라니, 내일도 시작 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