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여행생활자

산.책 : 금정산 등산코스

bigapple52 2018. 4. 10. 15:01

부산 최고봉, 금정산

산.책.시리즈



한 달에 한 번. 산에 가는 목표가 생겼다. 동행이 있으니 더 좋다. 서울에서 직장생활하다가 내려온 친구와 한 달에 한 번, 산에 가기로 약속을 했다. 처음엔 귀찮다, 피곤하다, 시간이 없다, 온갖 핑계를 대면서 피하려고 했지만 막상 한 번 다녀오니, 먼저 시간을 빼고 있다. 이렇듯 좋은 것은, 좋은 시간은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내가 먼저 시간을 마련한다. 온전히 하루를 마련하고자 바쁜 한 주를 보내고 늦게 잠이 들었는데도 새벽이 옴을 어찌 알고 눈이 번쩍 뜨인다. 혹시나 친구가 일어나지 않았을까 재촉 문자를 보냈다. 출발이다.




이번 등산코스는 범어사에서 부산대까지. 출발점과 도착점이 다른 관계로 차를 가져가지 않으려다가 돌아오는 길, 편히 왔으면 하는 마음에 차를 기어이 끌고 나갔다. 부산대역 공영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범어사역까지는 지하철로 이동했다. 봄이 왔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스산하고 차가운 아침공기가 상쾌했다. 미세먼지 이야기로 떠들썩한 뉴스에도 아랑곳않고 연신 헤벌레 웃으며 걷는다. 



대학시절 사진동아리를 하면서 4,5년동안 매년 3,4월 범어사 출사를 갔었다. 범어사출사는 신입생환영회 바로 다음날 가는 나름 1년 중 의미있는 촬영이었는데, 중요한 것은 전날 환영회로 늦게까지 술과 이야기로 가득 보내고 몇 시간 자지 못하고 1,2시간 후에 새벽 촬영을 위해 집합을 하는 한 마디로 빡센, 신고식 촬영 같은 것이었다. 환영회의 여파로 다들 쓰러져 못 일어날 만도 한데, 어찌 빠짐없이, 것도 늦지 않게 나갔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풋풋한 신입시절이었다. 선배들은 어찌 그 새벽에 김밥까지 챙겨 나왔을까. 그 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그저 추억놀이라 하기에는 너무 많은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봄맞이 산.책.을 위해 빠알간 바람박이 하나 장만! 봄기운에 발걸음도 가볍다. 산은 아직 봄이 오고 있는 중이라, 춥고 싸늘했다. 햇살은 따가웠다. 지난번 민폐 등산객으로 친구의 물과 간식을 뺏어 먹은지라 이번에는 사알짝 일찍 일어나 딸기도 꼭지 잘라 곱게 담고 물과 빵도 챙겼다. 나눠 먹자고. 범어사역 입구에서 김밥 두 줄 챙기니 마음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봄이다. 감출래야 감출 수가 없는 봄이다. 꽃이 아니라 새싹이다. 살짝 봉우리를 튼 새싹들이 여기저기 저마다의 모습으로 자랑질을 한다. 귀엽고 앙증맞다. 괜히 나도 그런 표정을 지어보려다.. 그만둔다. 사실, 좋고 귀엽고 예쁜 것을 보면 사람은 저도 모르게 따라하게 되는 것 아닌가. 겨울내 힘들었을 그 기운에 싹을 틔운 싹들을, 잎들을 보니 대견하고 기특하다. 이때 나의 표정은 므훗함이다.



범어사로 가는 길과 등산로를 가는 갈래길에서 등산로로 들어섰다. 원래라면 범어사도 기웃거렸을터, 이번엔 서둘러야 했기에 목적지를 분명히하고 발을 옮겼다. 아침 절의 고요함과 차분함에 내 마음도 동하여 차분해진다. 기웃기웃 처마를 기웃거리다 한쪽에 핀 벚꽃에 눈길 한번, 알록달록 등산복 차려입은 등산객들에 눈길 한번, 나무 그늘과 바닥에 그림자 놀이하는 나무들에 눈길 한번 주다보니 시간이 금방이다. 




가끔은 철부지 어린애같으면서도 가끔은 4살 아들키우는 현명한 어머니가 되기도 하고, 직업관이 분명한 멋진 커리어우먼이되기도 하는 대단한 친구다. 멋부리지 않아도 멋스런, 소탈한 친구다. 대학시절, 서툴렀던 서로의 모습을 알고 격려해줄 수 있는 친구가 있어 고맙다. 그때의 나를 기억할 때 웃으며 같이 할 수 있는 동행이 있어 감사하다. 



바람도 좋고 산소리도 가득하다. 절을 지나 올라가는데 담너머로 산과 하늘이 잘 어울려 그림을 만든다. 한번 쓰윽 손으로 쓰다듬어본다. 왠지 차갑고 부드러울 것 같다. 쨍한 햇볕 만큼이나 마음이 쨍한 시작이다.



생각보다 등산객이 없었다. 미세먼지 때문인가. 너무일찍 움직였을까. 한 두명씩 보이던 등산객이 없을 땐 깔깔대며 원없이 웃으며 걸었다. 이런 저런 19금 이야기도.. 이런 저런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건설적이고 희망적인 이야기도.. 이직에 대한 걱정도, 자식에 대한 걱정도, 부모에 대한 마음도.. 특별한 주제 없이, 목적 없이 잡담을 하며 오르는 길이 편한 것은 동행이 있어서일 거다. 




북문에 도착해서 김밥을 먹었다. 북문까지 오르는데 살짝 땀도 나고 숨도 헐떡이고... 그래도 뭔가에 쫓기지 않고 쉬고 싶을 때 충분히 쉬고 물 마시고 싶을 때 충분히 마시고 바람소리, 새소리, 풀소리, 나무소리 들을 만큼 충분히 듣고 움직였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쉬고 싶을 때 충분히 쉬면서.. 다시 내려가면 이런 여유는 못 부리겠지 하면서 양껏, 마음껏 즐겼다. 


우리의 이동한 금정산 등산코스는 범어사-고당봉-북문-원효봉-동문-부산대 였다. 일부러 이 코스로 학교까지 내려가는 것이 목표!



고당봉과 원효봉을 언제 지나쳤는지, 그저 산 능선을 따라 걸으며 하늘 한번, 능선 한번, 도시 한번, 바위 한번 쳐다보는 것이 즐거웠다. 산의 정상은 아직 추웠다. 겨울이었다. 겨울과 봄의 그 중간즈음. 차가운 바람도 좋고 으슬으슬 몸이 떨리는 것도 좋고 살짝 땀이 날 때 옷깃을 풀어 산바람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는 것도 좋았다. 



동문까지 2.7km다. 거리에 대한 감이 없는 게 여행하는 사람에게 치명적일 수 있으나 그저 길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가다보면 나오겠다. 가다보면 사람들한테 물어볼 수 있지, 가다보면 도착하겠지.. 하면서 그냥 길을 따라 내려간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길을 의심도 없이 따라 내려간다. 


저기는 어딜까. 저기 저 물과 작은 섬은 무엇일까. 부산에서 이렇게 오래 살았는데도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다. 구석구석 좋은 곳이 참 많다. 이런 곳에 살면서 늘 어딘가로 가려고 어딘가로 날아가려고 무던히도 애쓴다. 산을 다니기로 한 것, 잘 한 일인 것 같다. 




옛날과 많이 다르다. 이런 정돈된 길도 없었고 이렇게 나무가 길을 따라 나있지도 않았는데, 그냥 뻥 뚫린 넓은 공간이었던 것 같은데, 그런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마 시간이 많이 지나서일수도 있고, 이 곳이 옛날 거기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여튼 약간의 아쉬움을 가지고 동문을 향해 걸었다. 우르르 등산객이 반대쪽에서 올라온다. 반갑다. 괜시리..



원효봉 가는길, 산에 둘러싸인 도심도 보이고 멋진 바위들이 뽐을 내며 자리잡고 있다. 울타리가 없는 위험천만한 곳일 수도 있지만 온전히 산의 끝자락에서 아슬아슬 서있을 수 있는 스릴도 느낄 수 있다. 히말라야를 갔을 때도 이런 기분이었다. 안전울타리가 없이 그냥 터벅터벅 걸어올라갔던, 위험하다고 생각지 못했던, 구지 위험한 행동을 하지도 않았고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지도 않았던 그때가 떠올랐다. 친구는 무섭다며 샛길로 걸었지만, 나는 괜히 무서우면서 더 걷고 싶었다. 그 끝자락에서, 아슬아슬하게..





그 끝자락에서 다리를 꺼내어 걸고 아래를 향해 앉았다. 정말 여기서 뛰어서 저기까지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인간의 비행에 대한 욕망이란 이런 것인가. 저 바람을 타고 내려가면 정말 시원할 텐데, 엄청 개운할 텐데.. 올해에는 꼭 패러글라이딩을 도전해봐야겠다. 가장 비슷한 기분이지 않을까? 여튼, 한참을 아슬아슬하게 앉아 잡담을 나누다 조심조심 움직여 일어났다. 



동문이다. 동문에 도착해서 잠시 한 숨 돌려본다. 스피커에서는 귀에 익숙한 클래식이 흘러나온다. 햇볕은 더 쨍해졌고 우리는 점심거리를 걱정한다. 스을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추천글]

[여행생활자] - 산.책.시리즈 : 부산 장산

[여행생활자] - 네팔 포카라 : 히말라야를 가기 위한 그 곳

[여행생활자] - 제주 한라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