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부자 : 세부, 2017

알랭 드 보통이 말했다. 

행복을 찾는 일이 우리 삶을 지배한다면

여행은 그 일의 역동성을 그 열의에서부터 역설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활동보다 풍부하게 드러내준다.

<여행의 기술>

여행을 가서 만큼 사람들은 매순간 행복을 찾는 일에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다. 무엇을 먹고 어디를 가며 어떻게 가는 것이 좋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않을 것인지. 또한 반드시 해야 할 것과 그 다음으로 하고 싶은 것, 앞으로 시간이 된다면 하면 좋을 것들... 그 어디에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은 없다.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든 매 순간을 자신의 행복으로 채우기 위해 무던히 노력한다. 여행의 기억은 오래도록 남아 우리의 삶에 윤활제가 되어주기도 하고, 여행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갑작스런 폭소와 컬투라디오의 사연처럼 무한반복을 해도 식상하지 않은 이야기거리가 된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 하나의 작은 점이 되어버린 그 기억은 다시 또 문질러 번져 버린 마스카라처럼 스멀스멀 올라와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하기도 한다. 여행자의 선택은 매 순간 행복추구를 기준으로 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돈이 많든 돈이 없든. 여행의 기술은 어떤 상황에서든 좀 더 많은 행복을 어떻게 누리느냐의 기술이 아닐까. 없으면 없는대로 있으면 있는대로, 혼자면 혼자대로 여럿이면 여럿이서, 나의 신체리듬에 맞춰 움직이며 이 순간만큼은 시간에 쫓기지 않고 순간을 누릴 수 있는 대범함과 적극성이 발휘된다. 

세부에서의 3박4일은 매순간 행복추구권에 가 닿았다. 먹고 자고 마시고 뛰어내리고 웃고 걷고 보고 듣고 느끼고, 행복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의 선택 들이 있었다. 3미터, 7미터, 10미터, 14미터의 절벽에 서서 뛰지 않음을 결정했을 때 따라오는 불행보다 무섭지만 뛰고 난 후에 남을 행복한 짜릿함을 선택했다. 한 잔 덜 마시고 실수없는 온전한 정신보다 한 잔 더 들이킨 후의 실소와 실언, 묵은 감정의 해소를 선택했고, 조금 더 잠으로써 피로의 회복보다 조금 더 이 공간, 이 시간과의 공유를 선택했다. 덜 먹고 가볍고 편안한 위장의 상태보다 좀 더 맛보고 채우고 더 깊이 기억하는 것을 선택했다. 여행의 하루가 갈수록 앞으로의 '점'들이 많아진다. 너무 많아 선이 되어버린 것 같았는데, 모든 여행에서 돌아와 맞딱드리는 불안과 약간의 저항에 시름하다보니 또 희미해졌다. 그래도 언제든 점을 문지르면 스-윽 번져서 기억이 솟구친다. 빳빳하고 차가운 침대보와 숙소의 여닫이문의 덜컥거림, 물 위에 누워 선글라스 너머로 보이는 태양을 '어딜 감히' 응시하며 물을 먹어대던 그 성가심을. 그때의 기억과 지금의 기억이 조금씩 왜곡되어 좋은 것들만, 다시 가야 하는 이유들만 남아 머리 속에서 웅성거린다. 오늘도 그 기억으로 Che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