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의 풍경, 도시사람이야기

중구의 풍경

나는 도시사람이다.

그래도 나름 큰 도시, 제2의 도시,

부산을 떠나서 살아본 적이 거의 없다.

서울살이 잠시, 것도 일년이 채 되지 못한다 .

서울에 지내면서 알았다.

아, 나는 도시사람이구나. ㅎ

무슨 말이냐하면

도시를 좋아하고 도시에 살고 있고

도시를 벗어나기를 바라면서

벗어나기 무섭게 다시 찾아오는

도시의 일부인 거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여튼, 나는 도시 속에 옛도시의 모습을

찾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중구의 풍경을 좋아하는데

남포동, 광복동 등등

서면과 해운대로 시가지의 중심이 이동하기 전

시내라고 불리던 남포동, 광복동 거리를 

굉장히 좋아한다. 

왠지 그 곳에 가면

옛날 친구를 만날 것 같고

옛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감상에 젖게 되고

점점 도시화되어가는 한켠에

아직은 정감가는

뭔가 닳고 닳았지만

손때묻은 귀함이 느껴지는

그 곳이 좋다.

마치 흑백사진의 풍경같다.

사실 대학시절,

남포동, 보수동은 자주 찾는

출사장소였다.

자갈치에서 사진 찍지마라며 칼을 들고 오는 

아주머니의 쫓김을 당해본 적이 있는가

그때는 철없이, 그것이 마냥

사진부원이 되는 하나의 관문인냥

우리끼리의 우스갯소리 중 하나였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참 철없고

이기적이었다.

지금은 그런 풍경을 찾아보기

힘들뿐 아니라

이미 현대화된 시장의 풍경은

낯설기까지 하다.

발길이 잘 안 간다.

그래도 그 길을 들어설때의

바다내음은 언제든 그때의 나로

돌아가게 만든다.

부산 41번 버스는 민락동을 출발하여

대연동, 문현동, 부산역, 남포동, 광복동, 충무동을

지나 자갈치 좁은 차도를 돌아

다시 종점인 민락동을 향한다.

그래서 남포동에서 놀다가 

41번 버스를 타야 할때면

PIFF광장 앞에서 타서 충무동을 돌아

자갈치 시장 샛길을 일부러

타고 간다.

잠시지만 버스를 타고가며

구석구석 그때의 촬영흔적을 

찾으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보수동은 연중 2번 이상을 찾는

촬영지였다. 학교에서 1시간이 넘도록 

지하철을 타고 랄라룰루,

이곳을 들락거렸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유가 있었다.

당시엔 암실에서 사용할

흑백필름(벌크라고 대용량으로 구입,

24컷, 30컷씩 직접 잘라쓰는)과

현상액, 인화액, 인화용지 등을 

사려면 자갈치와 남포동 사이

코닥사진용품가게에 가야했다.

전시회때마다 스폰서를 받으려고

아저씨께 온갖 아양을 떨었던 것이..

늘 매정하게 딱 그만큼만 해주셨다는...

여튼 한달에 두어번은 암실용품을 사러

이 곳을 오갔으니, 

정이 들래야 들 수밖에 없었다.

덤으로 보수동은 지금은 많이

깔끔하고 정돈된, 최근 도서들도

많이 소장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내가 못 찾은 건지...)

옛날, 누렇게 색이 바래 손갖다 대기

싫을 정도로 낡은 책들,

옛날 옛적 젊었던 삼촌의 책장 위에

꽂혀 있었던 것 같은 책들,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다양한 옛 골동품들,

조악한 그림책,

세로글씨로 된 책들...

추억이, 옛날이,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 곳이 좋은 이유가..

내가 일부러 그 곳에 추억을 갖다 나르는

것이 아닐까 문득 생각이 든다.

일부러 그곳에만 추억을, 기억들을, 

사람들을 갖다 두고 꺼내어 보려고

찾아가는 것이다.

다른 곳도 많은데 유독 그 곳이

나의 감정을 쥐고 흔드는 걸 보면

위험하고 또 위험한 곳이다.

ㅎㅎㅎㅎㅎㅎ

걸어도 좋을,

자가용보다 버스가 더 좋을,

추운 겨울보다 따뜻한 봄, 가을이 좋을

그런 곳 말이다.